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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에 대한 자부심 가져라”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매출액 중 아시아, 특히 중국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어섰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크리스티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는 레베카 웨이 사장을 만나 아시아와 한국의 미술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전민규기자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전민규기자



매년 전 세계 미술계의 뜨거운 이슈가 되는 전시회가 있다.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열리는 현대미술전이다. 2008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로 꼽히는 제프 쿤스의 전시회를 시작으로 무라카미 다카시 등 현대미술의 거장을 초대했다. 베르사유궁에서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현존작가에게 최고의 영예다. 각국 미술계는 누가 초대되느냐를 두고 술렁인다. 6월 17일부터 11월 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 제목은 ‘이우환 베르사유(Lee Ufan Versailles)’다. 한국의 이우환 작가 초대전인 것. 아시아 작가로서는 2010년 일본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의 예술시장 성장 가능성 커

하지만 이 소식은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한국 미술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작가들은 자국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인기가 있다”며 경매회사 크리 스티(Christie’s) 아시아 사장 레베카 웨이(Rebecca Wei·45) 는 한국 미술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한국인에게도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막상 외국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 부끄러워진다.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한국 작가 중 일부는 작품 활동을 그만 둔 경우도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다. 한국은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웨이 사장의 계속된 지적에 기자는 한동안 멍했다.

한국, 중국, 홍콩, 타이완,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는 웨이 사장의 눈에 한국 미술 시장은 오묘하다. 한국의 갤러리는 아시아 어느 국가보다 발달했다.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미국 마이애미 등지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참가한 각국의 갤러리를 보면 한국의 작품 수준이 높다고 한다. “현대미술로 유명한 일본이나 대만보다 한국의 갤러리가 경쟁력 있다”고 웨이 사장이 평가할 정도다. 하지만 그뿐이다. 미술 작가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작품 수요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고객은 크리스티에서도 작품을 구매할 때 매우 보수적이다. 한국 미술가의 작품이 매우 훌륭한 데도 외국 작가를 선호한다. 자국 예술가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한 것 같다.”

이우환, 김환기, 백남준, 최우람, 권기수 등 한국 미술가 이름이 웨이 사장의 입에서 줄줄 나왔다. 그가 직접 수집할 정도로 좋아하는 한국 작가들이다. 웨이 사장의 호평은 크 리스티 임원으로서 매출을 올리기 위한 ‘립 서비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크리스티 매출 중 한국 고객과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한국 미술 시장은 여전히 변방에 불과 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이 사장은 1년에 한 번 이상은 한국을 꼭 찾는다. ‘미래 성장성’을 믿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말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에 머문 이유도 한국 미술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갤러리와 국립박물관 등을 돌며 디렉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 고객을 만나 사업을 논의 했다. “누구를 만났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우리 고객은 빅리치(big rich)”라며 웃기만 했다.

웨이 사장은 한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면서 국내총생산(GDP)을 예로 들었다. GDP가 높은 나라일수록 크리스티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 한국의 2013년 GDP는 1조3045억 달러(약 1000조3045억 원)였다. 전 세계에서 14위다. 2012년 2747억 달러(세계 은행 조사)였던 싱가포르에 비해 5배 이상 높다. 하지만 크리스티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보다 싱가포르가 높다. “한국 고객의 구매력은 앞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소더비와 함께 세계 경매시장을 양분하는 크리스티의 성장세는 놀랍다. 세계 경제 불황에도 거침없다. 웨이 사장은 “우리의 고객은 주로 상류층으로 불황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티의 2013년 매출은 71억 달러(약 7조1000억 원)에 이른다. 2014년 상반기(1월부터 6 월까지) 매출은 45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 성장했다. 크리스티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는 미국( 전체 매출액 중 20%)이다. 유럽, 중동, 러시아가 그 뒤를 잇고, 아시아가 맨 마지막이다. 웨이 사장에 따르면 세계 경매 시장의 54%를 크리스티가 차지해 소더비를 제쳤다.


중국 고객 크리스티의 ‘큰손’으로 부상

크리스티의 성장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지역은 아시아, 특히 중국이다. 올해 상반기 크리스티 매출에서 아시아 고객이 28%를 차지했고 그중 중국 고객이 24%다. 중국 고객은 크리스티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중국 상하이 출신의 웨이 사장이 2012년 크리스티에 합류한 이유는 아시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다.

웨이 사장은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미국 맥킨지에서 10여 년 동안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경매와 컨설팅,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직종이다. “예술을 잘 모르지만 경영에는 자신 있었다. 그래서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크리스티의 전체 직원은 2200여 명, 이 중 크리스티 아시아에는 220여 명의 직원이 있다. 대부분 예술 전공자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관점이나 지식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고 웨이 사장은 털어놓는다. “크리스티 아시아 조직을 관리하려고 공부를 많이 했다. 지금은 큰 어려움없이 일한다. 무엇보다 크리스티의 전통이 마음에 든다. 크리스티는 248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매출보다 작품의 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1766년 제임스 크리스티 경이 설립한 크리스티는 32개 국에서 12개의 경매장과 53개의 사무소를 운영한다. 크리 스티가 다루는 품목은 인상주의 미술, 현대 미술, 세계 고 미술, 도자기, 판화, 사진, 가구, 와인, 시계, 악기 등 80여 종에 이른다. 최고 낙찰가는 여전히 미술품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전 세계 경매 최고기록을 가진 미술작품은 지난해 11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거래된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1969년)로 낙찰가는 1억 4240만 달러다. 웨이 사장은 “좋은 작품을 경매 시장에 내놓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미술작품은 다른 품목보다 인기가 높고, 수요도 월등히 많다”고 설명했다.

웨이 사장은 한국 고객에게 “한국 작가를 사랑하라”고 조언했다. “한국 작가들은 훌륭하고 능력이 많다. 작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 한국 예술가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201410호 (201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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