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열여덟 살이 아니라 기쁘다네





한편을 같이 읽어요! 《한편》 1호의 주제 ‘세대’와 관련된 괴테의 생각을 전해 드립니다. 

1824년, 만년의 괴테가 지난 생을 되돌아보니 일하느라 시도 마음껏 못 썼다며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한편 ‘내가 지금 젊은이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며 안도하는 것은 어쩐지 얄미운 느낌이 있군요. 긴 생애 동안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기 때문에 남다른 통찰을 갖게 되었다는 괴테의 결론은 지금도 통할까요? 

대문호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요한 페터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에서 당시 독일의 청년들이 처한 문제, 기성세대의 입장, 그리고 괴테의 시대 비평을 잠시 소개합니다.




1824년 1월 27일 화요일 

괴테는 자서전을 계속 쓰는 일과 관련해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릇 한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란 성장기라 할 수 있고, 그 뒤부터 본격적으로 세상과의 갈등이 시작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거기에서 무언가 결과가 생겨날 때에만 흥미로운 것이네. 사람들은 나를 특별한 행운아라고 칭찬한다네. 나 또한 불평을 하거나 나의 인생행로에 대해 질책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나 실제로 보면 그것은 노고와 일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네. 그러니 칠십오 년 평생 동안 단 한 달만이라도 진정으로 즐겁게 보냈노라고 말할 수는 없는 형편이네. 안팎으로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주어졌던 걸세. 






나의 참다운 행복은 마음속에 시를 떠올리고 창작하는 데에 있었네. 공적인 활동에서 물러나 고독하게 살 수 있었더라면 나는 더욱 행복했을 것이고 시인으로서도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테지. 그러나 누군가가 세상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나면, 세상 사람들은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말은 사실이네. 
 
자자한 명성, 높은 지위란 인생에 있어서 좋은 일이야. 하지만 나의 모든 명성과 지위로 할 수 있었던 일은 기껏해야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그들의 견해에 대해 침묵하는 것뿐이었네.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은 나의 생각을 모르게 된다는 점에서 득을 보긴 했지. 하긴 그마저 없었다면 사실 지독히도 재미없는 삶이었겠지.” 





1824 2 15일 일요일

오늘 식사 전에 괴테로부터 마차 드라이브에 초대를 받았다.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아침 식사 중이었는데, 아주 들뜬 기분인 것 같았다. “마이어라는 전도유망한 청년이 왔었네. 써 온 시를 보니 큰 기대를 걸 만하네. 이제 열여덟 살인데 이미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해 있더군.”

그러고 나서 괴테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사실 나는 지금 열여덟 살이 아니라 기쁘다네. 내가 열여덟 살이었을 때는 독일도 겨우 열여덟 살이어서 아직 무언가를 할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느 쪽을 보아도 길이 막혀 있는 형편일세

20대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게오르크 멜히오르 크라우스 그림, 1775~1776년)



이제는 독일 자체가 모든 분야에서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조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 그런 데다가 그리스인이 되라, 로마인이 되라, 또한 영국인이 되라, 프랑스인이 되라는 요구를 받고 있지 않나! 더군다나 동양까지 목표로 하라니 미친 짓이야. 이 지경이니 젊은 사람으로서 정말 어찌할 바 모르는 건 당연한 노릇이지

나는 모든 게 갖춰진 이 시대에 젊지 않다는 것을 하늘에 감사하고 있어. 젊었더라면 가만있지 못했을 테지. 정말 미국으로 도망쳤을지도 모를 일이야. 하지만 이미 늦은 거라네. 이젠 그곳도 이미 너무 밝을 테니 말일세.”    




1824 2 25일 수요일

괴테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7년전쟁 동안의 프로이센 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세부적인 사실들을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리는 그의 대단한 기억력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커다란 이익이었어. 내가 태어난 시대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이 마치 일정에 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의 긴 생애 동안 계속해서 일어났네. 7년전쟁, 그에 이은 영국으로부터의 미국 독립, 더 나아가서 프랑스 혁명, 그리고 마침내 나폴레옹 시대로부터 그 영웅의 몰락과 그에 뒤따르는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 모든 사건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살아 있는 증인이 되지 않았겠나.

이 때문에 나는, 그러한 거대한 사건들을 책을 통해서만 배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실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는 다른 결론과 통찰에 이르게 되었네. 앞으로 몇 년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 하지만 그렇게 빨리 평화가 오리라고는 생각지 않네




높은 지위에 있는 양반들은 권력을 남용하고 싶어 안달이고, 대중은 점진적인 개선을 기대하며 적절한 정도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있네. 인류를 완전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야 완전한 상태라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은 영원히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법이어서, 한쪽이 행복하게 사는 동안 다른 한쪽은 고통을 당하고 있고, 이기주의와 질투심은 사악한 악령처럼 언제까지나 희롱을 계속하며, 당파 간의 투쟁도 끝없이 지속되는 거라네.

그러므로 가장 분별 있는 행동은 언제나 스스로 지니고 태어난 일, 자기가 배워서 익힌 일에 힘쓰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그들의 직분을 다하는 걸 방해하지 않는 것이네. 구두장이는 언제나 자기의 구둣골 앞에, 농부는 쟁기 뒤에 있으면 되고, 군주는 나라를 통치하는 법을 알면 되는 것이겠지. 왜냐하면 정치라는 것도 배워야만 하는 직업의 하나이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주제넘게 개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네.”

─ 「1824년」 중에서
요한 페터 에커만, 장희창 옮김, 『괴테와의 대화』 1권 (민음사, 2008), 109~123쪽
『괴테와의 대화』는......
젊은 문학 청년이었던 에커만은 괴테에게 무작정 자신의 원고를 보냈습니다. 에커만의 재능을 알아본 괴테는 그를 바이마르에 불러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십 년간 약 1,000번을 만납니다. 에커만은 살아 있는 전설이었던 괴테와의 만남마다 나눴던 대화를 기록하였고, 훗날 니체가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책이라고 평했던 『괴테와의 대화』는 이렇게 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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